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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1-13 11:40
[향토인물] 김시습(金時習 : 1435~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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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생육신에 포함된 인물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ㆍ동봉(東峰)ㆍ청한자(淸寒子)ㆍ벽산(碧山)이며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김주원의 후손으로 문정공(文貞公) 김상기(金上琦)의 14세손이며, 충순위(忠順衛)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시습이란 이름은 최치운(崔致雲)이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로 재직할 때 그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지어 준 것인데, 김시습은 3세에 이미 詩에 능했고 5세때에는《중용》ㆍ《대학》에 능통하여 신동으로 불리어 졌으며, 허조(許稠)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그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세종은 시습의 실력을 듣고 승정원(承政院)에 불러 시험을 보게 하였는데, 박이창(朴以昌)이 "동자지학(童子之學)은 백학(白鶴)이 무어청송지말(舞於靑松之末)"이라 하니 시습이 답하기를 "성주지덕(聖主之德)이 황룡(黃龍)이 번어벽해지중(飜於碧海之中)"이라 하였다.
이에 세종이 내가 친히 보고는 싶으나 일반이 해괴하게 여길까 생각되어 그 가정에 권하여 잘 교양하도록 하교하였다. 그리고 5세 때부터 13세까지 김반(金泮)의 문하에서 사서를 익혔고, 윤상(尹祥)의 문하에서는《예기》와 제자백가서를 배웠다.

  세조 1년(1455)에 삼각산 중흥사(中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법명(法名)을 설잠(雪岑)이라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세조 4년(1458)《탕유관서록후지(宕遊關西錄後志)》를 썼고, 세조 6년(1460)에는《탕유관동록후지(宕遊關東錄後志)》를 서술하였으며, 세조 9년(1463)에는《탕유호남록후지(宕遊湖南錄後志)》를 저술하였다.

  같은해(1463)에 책을 구입하러 서울로 갔다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고로 세조의《불경언해(佛經諺解)》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의 일을 보았다. 세조 11년(1465)에는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독서를 하였는데, 2년 후에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元覺寺)의 낙성식에 참석하였다.

  세조 14년(1468)에는 금오산에서《산거백영(山居百詠)》을 지었고, 성종 7년(1476)에는《산거백영후지(山居百詠後志)》를 지었다. 성종 12년(1481)에는 47세의 나이로 환속(還俗)하여 성종 16년(1485)에《독산원기(禿山院記)》를 남겼다.

  이외에도《금오신화(金鰲神話)》ㆍ《매월당집(梅月堂集)》,《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절개를 지키며 불교와 유교를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정조 6년(1782)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영월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1. <매월당 김시습 학술세미나>
2. <강원의 얼 선양교육>
3. <완역증수임영지>
4. <국역 동호승람>
5. <문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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