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집터에서 24대째 살아가고 있는 곳으로써 헛간 망와에 강희 30년(1691) 사랑채 망와에는 가경 9년(1804)의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정확한 연대는 미상이다. 집터의 전면에 넓은 들판과 작은 개천을 둔 모산봉(104m) 기슭, 약간 경사진 지형에 전면에 망덕봉, 우측에 덕우봉이 보이는 모산초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가옥은 대문간채와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며 대문간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초석, 기둥, 도리, 기와지붕 형채를 갖춘 완전한 벽체(H=180㎝)가 T자로 독립하여 마당을 좌우 두 공간으로 구획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형태의 벽체는 어느 가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가옥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대문간채는 맞배 솟을대문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각각 행랑방과 부엌 광을 가지고 있다. 광의 바닥은 마루널을 흙바닥 위에 깔아 놓았고 벽은 판벽, 문은 두짝 여닫이 판문으로 되어있고, 행랑방의 출입은 외짝 여닫이문으로 하며 하인이 거쳐하였던 곳이다.
부엌은 두짝여닫이 판문에 판벽과 흙벽위 시멘트 몰탈마감으로 벽체를 처리하였다.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이며 화강석 초벌대 기단 위에 18㎝ 정도의 각 기둥을 세워 구조체를 만들고 있다.
사랑채는 큰 장대석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에 각기둥을 세운 겹도리 팔작기와지붕 형식이다. 방과 마루방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방은 우물마루, 흙벽위 강회마감, 벽체, 연등천정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 우물마루로 된 툇마루가 있으며 이곳은 다른 툇마루보다 6㎝ 높게 단을 두고 있다. 방으로 통하는 문은 네 짝 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방과 방사이는 네짝미닫이로 연결되었다. 방의 바닥은 비닐장판, 벽지, 천정지 마감을 하였다.
사랑방에 이어서 측면으로 상노인이 거처하는 상방이 있다. 상방의 전면은 삼각형의 작은 마루를 가지며 이곳에는 사랑방과의 사이에 판벽이 있어 시야를 막고 있으며 이것에 이어서 마당쪽으로 일각문과 담장이 연결되고 있다. 전면창호는 미서기 용자살+세살외짝여닫이의 겹문이다.
T자형 담장의 우측을 통하여 안채로 들어가는 두짝여닫이 판문을 열면 좌측에 소여물을 끓이기 위한 큰솥이 아궁이에 걸려 있고 전면에는 안채를 한눈에 볼 수 없게 판벽을 세워 전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 판벽의 끝에 있는 기둥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원에 가까운 팔각 기둥형태의 것으로써 초석위에 서 있다. 이곳을 지나 안마당에 들어서면 장독대와 함께 안채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안마당의 좌측에는 사랑채로 연결되는 뜰아랫채가 있다. 이곳은 원래 방과 마루널이 깔린 곳간이 있었으나 지금은 개조하여 두 곳을 모두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는 화강석 두겁대 쌓기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에 기둥을 세워 겹도리 팔작기와지붕 형식을 취하였다. 겹집형태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방들이 양쪽으로 있으며 안채의 전면에는 대청마루에 이어서 우물마루의 툇마루를 깔았다. 툇마루의 높이는 사랑채와 같이 각각 높이의 차이를 두어 건너방 툇마루가 대청 툇마루보다 12㎝ 대청 툇마루는 안방 전면 툇마루보다 6㎝ 높게 서로 차이를 두고 있다. 대청 마루의 벽은 흙벽위 석회마감, 방들은 비닐장판, 벽지, 무늬목 합판 천정마감이다.
부엌에 이어서 판벽, 마루바닥으로 된 고간이 2칸 있고 안채 가까운 곳, 곳간 반칸은 뒤주로 만들어졌다. 문은 두짝여닫이 판문이며 이어서 판벽으로 된 마굿간이 있다. 원래 이곳은 광이었으며 마굿간은 바깥을 향하여 한칸 앞으로 내밀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손되어 현재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 앞의 마당에는 철쭉, 목백일홍, 사철나무 등으로 정원을 아주 잘 가꾸었다. 집 둘레는 대나무숲으로 집전체를 조경하고 있으며 진흙+돌로된 담장(H=1.6~2.4m) 그리고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1. <강릉의 문화유산> 강릉시. 2000
2. <강릉의 문화유적> 강릉문화원. 1998
3. <강릉시문화재대관> 강릉시. 1995
4. <강릉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릉대학교 박물관. 강릉시.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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